제12대 왕 인종
중종과 장경왕후 윤씨사이에서 태어났다.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죽게 되어
인종은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어릴 때에는 남곤에서 보호를 받았고 복성군을
왕으로 만들려는 경빈 박씨의 견제가 심했다.
작서의 변으로 경빈 박씨가 몰락하자 김안로는 세자를
보위한다는 명목으로 세자의 후원자를 자처했지만
김안로도 몰락하고 만다 그 후 조선의 권력은
문정왕후와 윤원형에게 넘어간다.
문정왕후는 경원대군을 낳은후 그 당시 세자였던
인종을 시기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경원대군을 세자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한번은 세자궁에 화재가 나게 되었는데 야사에 의하면
세자인 인종이 어머니가 나의 죽음을 원하니 그에 따르는 것이 효가 아니겠는가 하면서
타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밖에서 중종이 나타나 인종을 찾으니
이대로 죽으면 어머니에게는 효과 되지만 아버지에게는 불효가 된다는 것을 알고
밖으로 나왔다는 얘기가 있다. 문정왕후가 인종을 죽이려고 벌인 짓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증거는 없었고 그만큼 문정왕후와 세자와의 관계가 갈등이 많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중종이 죽고 1544년 왕위에 오른 인종은 기묘사화로 폐지되었던 현량과 부활시켰다.
기묘명현(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사림을 말한다 조광조 기준 김식 김정 등)을 신원하였다.
성리학에 입각한 왕도정치를 재현하려 노력하였다.
성품이 조용하고 욕심이 적고 효심이 깊고 형제간의 우애가 좋았다.
3살 때부터 글을 읽기 시작했고 1522년 관례(상투를 틀고 갓을 쓰게 하던 의례)를 하고
성균관에서 매일 세차례식 글을 읽었다 검약한 생활을 하였다.
인종은 몸이 약했고 문정왕후의 압박에 고생하였다.
문정왕후는 인종을 늘 괴롭혔는데 경원대군와 편전에 들어 우리 모자를 언제
죽일 거냐 죽일꺼면 지금 죽여라는 포악을 부리기도 하였지만 인종은 문정왕후를
어머니로 극진히 모셨고 이복동생은 경원대군과도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인종이 8개월만에 세상을 떠나자 독살설이 있었고 문정왕후가 인종에게
아주 친절한 모습으로 오색떡을 권했는데 오색떡을 먹다가 쓰러져 즉사했다는
야사의 이야기가 있다. 인종의 거식증으로 죽은 것을 문정왕후를 비난하기 위해
독살설을 지어냈다는 이들도 있으나 정사에서도 음식과 약까지 거부했던 인정의
모습으로 보아 독살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다고 보는 이도 있다.
중종이 병에 걸려 앓아 누웠을때 인종은 침식을 거르면서 간호를 하였고
즉위 이후에도 음식도 제대로 먹지 않고 제사나 사신 접대 등 정사에 몰입하였고
몸이 약한 인종을 신하들이 걱정을 하였다. 신하들이 자주 고기를 권했지만 먹지는
않았다. 죽기 1달 전에는 실록에도 기록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어의에게 진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 고집 부리다가 건강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묘호 인종 능묘 효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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