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대왕 중종
1506년~ 1544년
박원종, 성희안 등이 일으킨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올랐다. 연산군의 학정으로 반정을
일으켜 개혁하고자 하였고 사림의 중용하여
왕도정치를 이루려 노력하였다.
홍문관을 강화하고 현량과를 두어 김식 등
신진사류 28명을 뽑아 주요 관직에 등용
하여 사람이 중심이 되어 지나친 개혁정치를
하자 훈구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중종 역시 조광조 등의 사림들이 지나친
개혁에 불만을 가졌고 훈구파의
반정공신의 위훈삭제 문제를 계기로
기묘사화를 일으켰다.
이후 송사련의 신사무옥이 일어나
사람들은 또다시 숙청되었다.
훈구와 사림의 갈등, 훈구세력 내의 갈등,
훈구와 척식 간의 세락 다툼 등 정국이
혼란스러웠다
이로 인해 국방정책에도 혼란의
연속이었다. 삼포왜란이 일어나면서
조선과 일본의 통교가 중단되기도
했고 추자도 왜변, 동래 염장의 왜변
등으로 왜인들의 내왕을 엄격하게
제한하였다
북방 국경지대에는 야인들의 침탈이
잦아졌다. 갑산, 창성 등지에 야인들이
침입하여 인마를 살상하고 재물을 약탈하였다.
4군 지대에 거주하는 야인의 퇴거를
권유하고, 6진 지대에는 순변사를 파견하였다.
끊임없는 남왜북로로 왕권 호위를 강화하기
위해 정로위를 설치하고 왜구에 대비하기 위해
비변사를 설치하여 변방에 외침을 대비했다.
소격서를 폐지
도승 제도 폐지
향약을 설치
주자도감을 설치하여 구리 활자를 주조했다.
그러면서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편찬사업을
진행하였다. 사성통해,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편찬, 간행되었다.
저화와 동전 사용 장려하였다.
악포금단절목 반포하여 악포의 유통을 막고
두승을 만들어 도량형의 일원화하였다.
전라도, 강원도, 평안도에 양전 실시
관천기목륜, 간의혼상을 만들어 농업과
관련된 과학기술을 발달시켰다
명나라에 기술자를 파견하여 이두석, 정청의
조작법과 훈금술을 배워오게 하며 천문, 지리
, 명과학에 대해 연구개발을 하게 하였다
묘호 중종 능호는 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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