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반정
연산군의 폭정으로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이다.
배경
특권층이었던 훈구세력과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한 사림세력이 정처적으로 대립하면서
연산군이 훈구세력을 지지하면서
왕도정치를 추구하던 사림파는 무오사화로
고초를 당하고 훈구파는 권력이 더 세지고
횡포가 심하게 되자 궁금계열 중심의
측근세력을 등장시켜 훈구세력을
견제하고자하였고 1504년 갑자사화로
인해 훈구파와 사림파는 희생이 많았다.
이로인해 연산군은 학정이 심해졌다
경연과 대제학제도를 폐지하고
성균관 학생들을 몰아내고 성균관을
놀이터로 만들기도했다.
채청, 채홍사를 보내 운평을 모집하고
사냥을 위해 민가도 철거하기도 했다
연산군의 학정을 비방하는 한글 투서가
언문으로 쓰이자 한글 사용을 금지하고
언문구결을 다 불태워 버리기도 하였다
사대부의 부녀자를 농락하는 황음이
자행되고 정치에 소홀하였다.
반정
성희안, 박원종 등 훈구세력이 연산군
폐출을 도모하고 유순종이 함께하였다.
그리고 연산군의 측근이었던 신윤무,
장정 등도 가담하게 된다.
연산군이 장단의 석벽으로 유람할 때를
노려 거사하려 하였드나 유람이 취소되면서
거사가 중지될 뻔하였으나 호남에 있던
유빈, 이과 등이 거사 격문이 서울에
나돌게 되어 계획되로 거사를 강행하였다.
1506년 9월 1일 신윤무, 성희안, 박원종,
장정 등이 무사들을 훈련원에 모으고
진성대군에게 연산군 폐위시키는 일에
대해 알린다 .연산군의 측근 신수근,
신수영, 임사홍 등을 불러내어 격살
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반정이 성공하자 성희안은 진성대군의
친어머니 정현왕후에게 허락을 얻어
연산군을 폐위하고 강화 교동에 유배
보낸다. 9월 2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게 되며
이가 중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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